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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 생각만 해도 지루한 종목입니다. 물론 마라톤 동호회는 물론 마라톤을 즐기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마라톤에 매우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사연은 다음에 써보기로 하겠습니다.) 

   여튼 마라톤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월계수 관을 볼 때마다 '거참, 딱히 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불편해 보이고 희한하구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최근 읽고 있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상세한 이야기가 나와 한 번 정리해 봅니다.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지만 디테일하게는 모르시는 분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하기야, 우리나라서 잘 보기도 힘든 월계수 나무에 대해서 알아서 뭘 하겠냐 만은...)



1. 자기애, 자기자랑의 결정체 아폴로(아폴론) : a.k.a. 나무 관 성애자


© mythologica.fr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론 가끔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콧방귀가 절로 나는 이상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아폴로와 다프네의 이야기도 황당무계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이야기에 앞서, 아폴로를 비롯해 신화에 등장하는 신을 비롯 등장인물들은 이름이나 별명이 너무 많아서 참 헷갈립니다. 게다가 같은 인물을 로마식 또는  그리스식으로 표기하면 벌써 동명이인.. 아니 이명동인이 됩니다. 우리는 사실 그리스식 표기가 훨씬 익숙하지요.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제우스는 로마식으로 윱피테르입니다. 윱피테르가 당췌 누구입니까? 제우스랑 같은 사람이라니까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로마식 표기를 따르기 때문에 드럽게 헷갈립니다. 그나마 아폴론, 아폴로는 발음이 거의 같으니 다행이지요. 아폴론은 그리스식 표기, 아폴로는 로마식 표기입니다.(그러거나 말거나)

   여튼 아폴로, a.k.a 델리우스(아폴로가 에게 해의 델로스 섬 출신이라 그렇게 부른다고 함) or a.k.a 포이부스('빛나는 자'란 뜻으로 태양신으로서의 아폴로의 별명)는 활을 들고 다니는 신으로 궁술과 예언, 음악, 시 등을 담당하는 신이라고 합니다. 

   때는 대홍수 직후(성경뿐 아니라 수메르 신화, 인도 신화 등 어디를 비롯해 홍수 이야기가 빠지는 곳이 없습니다. 대홍수 이야기야말로 역사적 Ctrl+C, Ctrl+V의 대표이자 복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통 진흙으로 덮여있던 대지는 햇볕과 열기로 슬슬 데워지고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수많은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생물만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이상한 '물괴... 가 아니라 괴물'도 탄생했는데 이때 대지가 원치 않은 생물 거대한 뱀과 같은 생김새의 "퓌폰"이 태어납니다. (이 대목에서 북유럽 신화의 '요르문간드'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겠지요... -.-)

   워낙 커서 넓은 산기슭을 차지하고 있다보니(요르문간드 보다는 스케일이 훨씬 작긴 하네요) 사람들이 무서웠습니다. 사람들은 크고 생소하면 무조건 무서워하고 싫어하지요. 이때 딴따단~~~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활을 들고 다니는 신인 아폴로가 수천 개의 화살을 거의 다 써서 이 불쌍한 '물괴... 가 아니라 괴물' 퓌톤을 처단합니다. 활통에 활이 수천 개가 들어간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왜 맞는지도 모른 채 퓌톤은 상처마다 독액... (이름으로 봐서는 퓌톤 치드가 아닐지..)을 흘리며 죽어갑니다. (외모가 아름답지 못하고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이유도 없이 죽어간 퓌톤에게 애도를 보내고 싶습니다.)


© http://www.talesbeyondbelief.com/myth-stories/apollo-and-the-python.htm


   아폴론은 누기 시키지도 않았던 자기 치적을 사람들이 잊을까 봐, 즉 생색을 내기 위해서 수많은 군중들이 참가하는 신성한 경기 대회를 창설합니다. 자기가 제압한 뱀을 잊을까 노파심에 경기 이름도 퓌토 경기라고 부릅니다. (퓌토 경기는 올림피아 경기, 네미아 경기, 이스트모스 경기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4대 경기이고 4년에 한 번씩 델피에서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생색의 결정판이 바로 퓌토 경기였던 것입니다. 

   이 경기에서 종목마다 우승한 젊은이들에게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관을 상으로 줍니다. (이때까지는 월계수가 없었고, 아폴로 자신도 아무 나무로 만든 관을 쓰곤 했답니다. 그나저나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관이 무슨 상이나 되나 싶습니다. 먹을 거나 줄 것이지...) 그리하여 아폴로는 자신이 나무 관 성애자라는 사실을 만 천하에 알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아폴로의 치명적 실수, 쿠피도(큐피트) 무시하기 때문에 인생.. 아니 신생 망침..


   뭔가 항상 자기자랑과 자기애가 넘치는 아폴로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데, 이는 사랑의 화살 명사수 쿠피도(큐피트)와 관련이 있습니다.




   어느 날, 쿠피도가 그냥 자기 활을 구부리고 팽팽한 시위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엄청난 뱀 퓌톤를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폴로는 괜히 동종 무기를 사용하는 덩치 작은 쿠피도를 보고는 우월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망발을 합니다. 


이 개구쟁이 꼬마야, 전사들이 쓰는 무기가 네게 왜 필요하지? 그런 무기는 내 어깨에나 맞지. 나는 짐승이든 적이든 실수 없이 맞혀 쓰러뜨릴 수 있고, 얼마 전에는 독이 든 배로 여러 유게룸(1 유게룸은 2523 제곱미터)의 땅을 덮고 있던 부어오른 퓌톤을 수많은 화살을 쏘아 뻗게도 했단 말이야. 너는 횃불로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사랑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 명성에는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았으면 좋겠어.


   뭐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쿠피도(큐피트) a.k.a. 베누스의 아들이 기분이 좋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워낙 평소에도 가만있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쏘아 대는 이 친구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답을 해줍니다.


포이부스여, 그대의 활이 무엇이든 맞히는 활이라면 내 활은 그대를 맞힐 수 있지요. 그리고 모든 동물이 신만 못한 그만큼 그대의 영광도 내 영광만 못하지요.


   음... 뭔가 직역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뭔 소린지 잘 모르겠기도 하지만, 여튼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리고는 날개를 저어 대기를 뚫고 날아오르더니 그늘진 높은 곳에 숨어 화살통에서 서로 효력이 다른 화살 두 개를 꺼내 듭니다. 하나는 사랑을 쫓는 것(사랑을 싫어하고 이성을 혐오하도록 하는 효과)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랑에 빠지는 화살과는 정반대인 화살입니다. 다른 하나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랑에 빠지도록 하는 화살이었습니다.

   이 잔혹한 악동 쿠피도는 사랑에 빠지도록 하는 화살을 아폴로에게 쏘아서 그의 뼈와 골수를 꿰뚫습니다. 그리고 사랑 회피 화살은 뜬금없이 페네오스의 딸 다프네에게 쏘아버립니다. 다프네는 왜 당하는지도 모르고 갑툭튀해서 이성 혐오자가 되어 버립니다. 거참, 이 이야기의 진정한 희생자라고나 할까요.

   아폴로는 평소 잘났다고 으스대던 태도는 온대 간 대 없고 사랑에 빠져 다프네를 쫓아 다니는데 다프네는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도망을 치는 애정 혐오자가 됩니다. 이렇게 사랑과 혐오의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3. 아폴로와 쿠피도의 다툼에 쿠션으로 인생 망친 갑툭튀 다프네...


   여기서 왜 다프네에게 사랑을 쫓아내는 화살을 쏘았는지 모르겠지만 다프네가 갑자기 링으로 오릅니다. 아리따운 다프네는 얼음처럼 차가운 태도로 남성들의 구혼을 혐오하며 남자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남성들이 구혼하는 악순환이... 

   남자를 알지 못한 채 길 없는 숲속을 쏘다니며 사랑도 결혼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딸아, 넌 나에게 사위와 손자를 빚지고 있어."라는 턱도 없는 소리를 하지만 들어 먹지를 않습니다. 쿠피도의 화살은 유통기한도 없습니다. 이 다프네는 당대 잘 나가는 디아나(사냥을 관장하는 여신이고 아폴로의 쌍둥이 남매)에게 경쟁의식이 있었던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영원한 처녀로 남아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디아나에게는 그녀의 아버지가 벌써 그렇게 허락해주었어요


    라며 친구 아빠 핑계를 댑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다프네의 아버지는 이를 허락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을 이끌었으니, 포이부스 아폴로는 다프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결혼을 원했습니다. 아폴로의 사랑은 쿠피도의 화살, 즉, 약물에 의한 것이었으니 약도 없고, 답도 없는 것으로 그녀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점점 불타올랐습니다. 

   혼자 계속 쫓아가면서 이런 소리를 합니다. 


그대는 모르고 있소. 성급한 소녀여, 그대는 모르고 있소, 그대가 누구에게서 달아나는지. 내가 누군지 몰라서 달아나는 것이오. 델피 땅과 클라로스와 테네도스와, 파타라의 궁전이 나를 섬긴다오. 윱피테르(제우스)께서 나의 아버지라오. 미래사와 과거사와 현재사가 나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소. 나는 또 노래와 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해준다오. 내 화살은 어김없이 목표를 맞히지만, 내 것보다 더 확실한 목표를 맞히는 화살 하나가 근심 걱정 없던 내 가슴에 상처를 입혔고. 의술은 내 발명 물이고, 나는 온 세상에서 구원자라고 불리며, 약초들의 효력은 내 손아귀에서 나온다오


   그 와중에 이따위 혈연, 아버지 드립과 능력 드립을 칩니다. 가뜩이나 혐오감이 가득한데 이런 자기자랑 드립까지 쳤으니 기겁을 했겠지요. 계속 자기자랑 드립을 치는데 다프네는 오히려 겁을 내며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멀리 도망가 버립니다. 

   이렇게 도망을 가자. 아폴로는 그 도망가는 모습까지도 매력적이라 느낍니다. 답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속력으로 뒤를 쫓습니다. 스토킹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스토킹이 지나쳐 거의 변태가 되어갑니다.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그는 그녀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등 뒤에 바싹 따라붙어 목덜미 뒤로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털에 입김을 불어댔다.


   아우, 시바 욕 나오는 변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달리다가 너무 지친 다프네는 그야말로 낭패에 빠졌고 죽고 싶어졌을 겁니다. 달리다가 페네오스의 강물들이 보이자 아버지에게 이렇게 간청합니다. 

아버지, 저를 도와주세요! 만약 저 강물 속에 어떤 신성이 있다면 너무나도 호감을 샀던 내 이 모습을 바꾸어 없애주세요!

   에.. 또... 이런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아버지가 이 기도를 재깍 들어줍니다. 심지어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효력이 발휘되어서 마비감 같은 것이 사지를 사로잡았고. 부드러운 가슴 위로 엷은 나무껍질이 덮였습니다.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그녀의 두 팔은 가지로 자랐으며 방금 전까지도 빨리 달리던 발이 질긴 뿌리들에 붙잡혔고, 얼굴은 우듬지가 차지했습니다. 


© https://commons.wikimedia.org



   변태 아폴로는 그런데도 그런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이래서 약물 중독이 무섭습니다. 약물 오남용은 인생을 망칩니다. 나무줄기에 손을 얹어서 심장이 헐떡이는 것을 느끼고, 나무 가지들이 팔다리인 양 끌어 안고 나무에 입 맞추었습니다. 나무가 되어서도 욕을 보입니다. 나무가 되어서도 다프네는 움츠러들었습니다.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아폴로가 다프네에게 말합니다. 


그대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나, 반드시 내 나무가 되리라. 월계수여, 내 머리털과 내 키타라(리라 비슷한 현악기)와 내 화살통에는 언제나 네가 감겨 있으리라. 개선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카피톨리움 언덕이 긴 행렬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너는 라티움의 장군들과 함께하게 되리라. 너는 또 아우구스투스의 문 앞에서 충실한 문지기 노릇을 하며 문설주 사이에 걸려 있는 참나무 잎 관을 지키게 되리라. 그리고 내 머리가 젊고 또 내 머리털이 잘린 적이 없듯이, 너도 네 잎의 영광을 영원히 간직하도록 하라!


   이렇게 말을 마치자 월계수가 갓 태어난 가지들을 흔들고 우듬지를 움직이는데 마치 머리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스토리로 나무 관 성애자 아폴로가 쿠피도의 화살 때문에 광적으로 사랑하며 집착한 다프네가 월계수 나무가 되어버리자 아싸 잘 됐다 싶어서 그동안 떡갈나무 같은 걸로 만들던 나무 관을 월계수 관으로 만들고, 자기 온몸과 장신구 등등에 가까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나무 관 성애자가 월계수 관 성애자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영광의 월계수 관이 올림픽 경기의 피날레를 장신하는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씌워주는 영광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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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월계수가 나라마다 풍성할 리도 없고, 관을 만들기 좋지도 않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만 있고 각 지역과 지방에서 많이 나는 비슷한 나뭇잎으로 월계수 관을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씌워졌던 관인데 실제로 올리브 나뭇잎으로 만든 올리브관입니다. 월계관보다 올리브관이 더 많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월계수 잎은 오이와 무 피클을 만들 때나 쓰도록 합시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국내도서
저자 :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 천병희역
출판 : 숲 200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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