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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술.알.못의 고백...


저는 한마디로 술.알.못입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제 의지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대기업에 다닐 때는 술을 너무 사랑하는 직장 상사와 일하느라 몸도 마음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 분의 지론은 일이 일찍 끝나면 일찍 끝났으니 한 잔 진하게 해야하고, 일이 늦게 끝나면 늦게까지 고생했으니 한진 진하게 하면서 풀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일찍 끝나거나 늦게 끝나는 것이니 요약하자면 항상 술을 마시자는 것이지요.


그 당시는 정말 술을 전혀 조금도 네버 낫띵 못 마셔서 술자리가 시작되기 전에 밥이나 배를 채울 것은 먼저 먹으면서 생명의 위협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술자리가 시작되면 얼릉 소주 세잔 정도를 마시고 최대한 흡수가 되기전에 화장실로 가서 먹은 것을 토해냈습니다. 건강에도 좋지 않고 속도 나빠지고 여러모로 힘들었지요. 그렇게 화장실을 들락거리면 직장 상사는 그걸 알고 또 빼냈으니 다시 마셔보자고 하셨더랬습니다. 


그 분이 딱히 나쁜 분도 아니고 배려도 하시는 분이었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안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법 무감각한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3년 만에 첫 직장을 때려치웠습니다.


그 이후에는 술을 억지로 강권하는 분위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한 두잔 정도만 마시는 수준이었죠. 어쨌거나 술자리는 왠만하면 참석했습니다. 흡연도 하지 않지만 흡연장에는 꼭 따라가서 간접 흡연은 했습니다. 


군대시절부터 느낀 것이지만,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원리와 원칙을 따지면 목청 높여 싸우다가도 흡연장에서 만나 숙떡숙떡하면서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면 거래가 오가는 것이 일이 돌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실제로 흡연장에서 절대로 물러설 일이 없을 것만 같던 부서간의 갈등이 큭큭 웃으면서 해결되는 것을 여러번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귀 다툼 같던 갈등이라는 것이 진짜인 경우도 많지만 대체로 내 부서를 위해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아름다운 쇼와 같은 부분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울러 저는 그런 정치적인 행동에 전혀 소질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사내정치가 필요없는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리하여 다음 직장은 공기업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공기업이라고 사내 정치가 없을 리가 없고, 업무 능력 평가에 있어서는 대기업보다 더 업무 외적인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였지만 딱히 진급에 욕심만 버리면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아무 탈이 없는 것 역시 저에게 더욱 더 중요한 요소였기에 지금까지도 그럭저럭 다니고 있습니다. 


술.알.못 이야기가 회사생활 이야기로 흘러가버리고 말았는데 어쨌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도 술이라는 것을 조금씩 마시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맥주도 조금 마시고, 아내와 밤에 간단한 안주를 놓고 과일주나 와인 같은 것을 살짝 홀짝거리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인터넷에서 샹그리아 만드는 법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집에 남아도는 과일을 가지고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술맛을 잘 몰라서 샹그리아를 마셔봐도 술은 술일 뿐이었는데 지인들이 놀러왔을 때 냉장고 속에 고이 모셔져 있던 샹그리아를 옛따 먹어라 하고 줘봤는데 깔끔하고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거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저나 아내는 이 정도 술.알.못 입니다. 




2. 와인 코르크 따기 쉽게 할 수 없나요... 크흙...


오랜만에 마트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와인을 할인 하길래, 아내가 물었습니다 "여름에는 맥주가 좋지만 이제 날이 추워지니 와인을 마시는 게 나은거 아닌가?" 그래서 제가 대답합니다. "그런가?..." 제가 알게 뭡니까? 술은 술일뿐... 그래서 아내가 하는 말이면 뭐든 듣는 저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하나씩 사왔습니다. 화이트 와인은 안마셔도 봉골레 스파게티 만들 때 넣으면 좋으니까요.



레드 와인은 "몬테스 클래식 카버네 소비뇽"이라는 요란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엄청 많이 팔렸다면서 할인을 많이 해주더군요. 


그냥 마시기 보다 샹그리아를 만들면 좋으니까 일단 과일을 썰어서 병에 담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냥 집에 굴러다니는 사과, 배, 귤, 단감까지 때려 넣었습니다.


문제는 와인을 따다가 발생했습니다... 하아..


화이트 와인은 코르크가 좀 부드러워서 잘 따졌는데 이 코르크는 처음부터 뭔가 잘 안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결국 억지로 돌려 넣고 잡아 당기는 과정에서 요로코롬 뽀개져 버렸습니다.


사실 코르크 따개가 나름 힘을 많이 받는 도구인데 결합부를 플라스틱으로 만들다니 지금보니 참 생각없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안될 때는 도구탓을...)


나름 아끼는 귀염귀염 앵무새를 닮은 다기능 병따게 였는데, 너무 쉽게 운명을 달리 했습니다. 이 때부터 사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코르크 마개 따는 법이 적혀 있을 것 같은데 무식하게 다른 코르크 따개로 악착 같이 때긴 했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살짝.. 욕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와인 병 따는 법을 검색해봤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방법 그대로 했는데 벌써 병따개를 돌려 넣을 때 너무 빡빡해서 안들어가더라고요... 거참...




팬치까지 동원해서 온 몸과 이두박근의 힘을 총동원한 결과 작은 병 두개의 샹그리아를 완성했습니다. 냉장고에 잘 넣어뒀다가 마셔봐야 겠습니다. 이번엔 냉장고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남은 와인은 부서진 코르크의 남은 밑부분을 이용해 살짝 막아뒀습니다. 이 와인도 언제 다 마시게 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스테이크 구울 때나 넣어서 써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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