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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년 이맘 때 서울 마라톤이 열릴 때마다...

 

죽기 싫어 집근처 한강변에서 달리기를 종종 하기는 하지만 달리기에는 문외한이지만 매번 1월 초에 열리는 서울마라톤 대회 소식을 들을 때면 남다른 감회에 빠지게 됩니다. 


때는 2012년 11월 4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년 전이었습니다. 그 날도 일요일이었네요. 11월 4일 아침 만삭이던 아내는 갑자기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자기야. 신호가 오는 것 같아, 준비하자"


그 말에 벌떡 일어나 후다닥 씻고 나갈 준비를 합니다. 첫째도 아니라 둘째라 긴장감은 조금 덜 하긴 했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첫째 때는 아파트에서 길만 건너면 있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했는데, 여느 지방 산부인과처럼 우리동네 산부인과도 더 이상 출산은 받지 않고 진료만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집에서 가깝고 나름 평이 좋은 길동사거리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당연히 출산도 그쪽으로 가야할 터였지요.


일요일 아침이라 차가 막힐 일은 없으므로 그나마 안심했지만 혹시나 가는 길에 양수가 터지고 난리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역시나 길에 차는 거의 없었고 수월하게 천호사거리 방향으로 진입을 했습니다.


난리는 이때부터였습니다. 차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막혀 있는데다가 교통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슬슬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마음은 급한데 일단 우회를 해야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앞에서 차량통제를 하던 교통경찰에게 물었더니 아뿔사 평생 한번도 신경을 써 본적이 없던 마라톤 대회 때문에 교통을 통제하는 거라고 설명하더군요. 남 신경 쓸 여력은 없는 상태였지만 일요일에 나와서 수많은 사람들의 짜증을 받아주고 있는 이 양반들도 보통 일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하필 그 마라톤 구간이라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동사거리를 돌아 마치 병원을 둘러싸 막아서듯 짜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이 끝나지 전에는 병원에 진입할 방법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대기하면서 우회하려고 시도하는 수많은 차량들 사이에 끼어 어떻게든 길동 사거리 방면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골목 사이사이를 통과하고 파고들면서 겨우 병원 반대편까지 접근을 했지만 차를 세워둘 곳도 내려서 지나갈 방법도 없어서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의 아내는 몸 상태가 시시각각 출산에 임박해져와서 배가 아프다고 큰일이라고 발을 동동굴렀습니다.


방법이 없어서 일단 아내를 내리게 한 다음 교통 통제하고 있는 경찰 중에 연배가 있어 보이는 분에게 임중에산부라 급하다고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척 난처해 했습니다. 그 위치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지하인지 어딘지로 건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고, 저는 일단 차를 어딘가 주차해야만 했기 때문에 아내와 헤어져 주차할 곳을 급히 찾았습니다. 


그렇게 아내를 보내고 주차할 곳을 찾아 헤메면서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고 겨우겨우 차를 주차시킨 다음 길동사거리 건너편 도로 폭이 가장 좁은 곳의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곳에는 교통경찰 한명과 딱 봐도 어려보이는 의경이 역시나 난처한 표정으로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바라보니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은 주로 일요일인데도 일을 하러 나온 사람들, 그러니까 휴일에 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같아 보였습니다. 공부하러 가는 학생, 리어카를 끌고 어딘가를 가려는 나이든 노인, 낡아보이는 오래된 자전거 뒤에 짐을 싫은 할아버지, 그리고 어디나 볼 수 있는 화가 난 아저씨 등 10여 명이 길을 건너지 못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아저씨는 왜, 무슨 권리로 길을 막고 못가게 하느냐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교통 경찰 아저씨의 대답이 허를 찔렀습니다. 


"저 사람들은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서 도로를 통제하고 마라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예요. 제가 임의로 건너가게 해 주다가 저 사람들이랑 부딪히면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미 마라톤은 거의 끝물인지 지나가는 인원이 확 줄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마라톤 참가자들은 다른 외계에서 온 사람들인지 헤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면서 지나갔습니다. 마라톤 대회 선수들이 달릴 때 길가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시민들을 상상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 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어둡고 답답해 하고 있어 누구하나 손을 흔들며 화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야 말로 아내가 걱정되 이런 거지같은 상황이 너무 화가나고 답답했습니다. 


길만 건너면 병원인데 아내가 이미 가 있을텐데 갈 수가 없다니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급기야 교통경찰 아저씨는 사람들을 지나가게 해 주겠다면 한줄로 서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것도 무슨 권력인지 말투에 거들먹 거리는 뉘앙스가 실렸습니다. 화가 난 아저씨가 또 한번 투덜대자 제일 뒤로 가서 서라며 큰 소리를 치는데 이 무슨 웃지 못할 상황인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뒤쪽으로 서게 될까마 아무소리 못하고 있는 제 자신도 정말 웃프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권력이나 시키는 것에 순응하는 태도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아닌지 그 날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그 와중에 순간을 틈타 후다닥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건너편에서 지키고 있던 어린 의경은 이미 지나간 사람을 붙잡고 다시 돌려 보낼 수도 없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그 광경은 또 하나의 블랙 코미디였습니다. 유유히 지나가 갈길을 가는 사람을 쳐다보며 교통 경찰은 괜히 남은 사람들에게 더 큰소리를 칩니다. 


어느덧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정말 지나가는 마라톤 참가자가 드물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멀리까지 상황을 살피던 교통경찰이 사람들을 지나가게 해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부랴부랴 병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접수처에서 아내의 이름을 대며 조금전에 들어온 산모가 어디로 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제 아내는 아직 병원에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 벌써 입원해 출산 준비를 하고 있을거라 예상하고 있던 저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져버렸습니다. 도대체 아내는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간호사들에게 그럴리가 없는데 다시 확인해 달라고 당황해하고 있는데 저 뒤쪽 이층 입구쪽으로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는 아내가 저를 불렀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힘겨워 보이는지 자초지종을 물을 새도 없이 일단 입원을 하고 저는 출산실 밖으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쪽 상황도 비슷했던 데다가 멀리까지 돌아갔다고 다시 돌아오니 만삭의 몸에 출산 직전이라 걸음도 느리고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었습니다. 


더 어이 없었던 것은 우리가 그렇게 어렵게 겨우 지나온 그 길이 아내가 입원을 하고 불과 몇 분이 되지 않았는데 마라톤이 마무리되서 이미 치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한 두시간만 진통이 늦게 왔다면 겪지 않았을 개고생을 생각하니 정말 기가차고 헛 웃음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둘째는 그날 병원에서 건강하게 출산해서 지금은 어느덧 7살이 되었고, 그 아이가 오늘 생일을 맞았습니다. 


이날만 되면 그 때의 황당했던 해프닝과 길을 건너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저와 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 거기서 권력이라도 휘두르듯 일장 연설을 하던 교통 경찰의 태도, 그 와중에 마라톤에 참석한 사람들의 밝고 헤맑은 모습,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던 아내의 모습이 어우러져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라는 곳의 복잡한 이미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 때문인지 저와 아내는 앞으로도 서울에 들어가 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째가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기만 합니다.

 

 


 



2. JTBC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에 대해서...

 

아마 이 글을 올릴 때면 이미 마라톤이 끝나고 정리가 될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기왕 쓴 김에 정보를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마라톤은 뛰어본 적이 없어서 확실치도 않지만 어쨌거나 11월 첫째주 일요일에 열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서울 마라톤 대회는 JBTC가 후원하는 군요.



  



대회에 참여하신분들은 다치는 분 없이 즐겁게 레이스 마무리 하시기 바라고, 혹시라도 교통통제 때문에 저처럼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분들이 없으셨기를 바래봅니다.


 

"외계지성체의 일상 단상" 여러분의 공감과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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