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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국내도서
저자 : 에피쿠로스 / 오유석역
출판 : 문학과지성사 199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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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피쿠로스는 누구고 무슨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학창 시절에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라는 세트 상품으로 스치듯이 지나가는 인물입니다. 쾌락주의자 정도로 껍딱을 미세하게 핥고 지나가는 케이스랄까... 핥핥...

   당연히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이 양반이 그렇게 얄팍하게 한 단어로 정리할 만큼 단순한 사상가는 아닙니다. 사상가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형님이 그저 철학만 연구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구 분야도 그렇고 저서도 수없이 많다고 전해집니다. 우리가 또 이제 와서 에피쿠로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스토커 수준으로 알아야 할 이유는 즌혀 없기 때문에 살짝만 소개하겠습니다. 

   에피쿠로스 형님은 무려 B.C 341년,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341년 전에 사모스 섬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철학을 공부하고 한편 배운 걸 가르친 사람인데 얼마나 오래인지 파피루스에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아, 옛날 사람...

   지금 생각해도 나름 파격적이고 전향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시 사회통념과 달리 '정원'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여자와 노예는 물론 창녀들과도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나 그를 비웃는 사람들도 이 양반과 제자들과의 끈끈한 관계는 무척 부러워했다 전해집니다. 지금의 생활 공동체 보다 더 친밀한 패밀리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에피쿠로스 형님이 죽을 때 전하는 유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온통 "누구누구를 네가 좀 잘 돌봐라. 죽은 누구 아들딸들을 니들이 좀 챙겨라" 뭐 이런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고, 그 외에는 "공부 좀 해라" 이런 내용이니 말입니다. 

   이 형님의 철학 사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규범론과 자연학 그리고 윤리학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살포시 스치는 내용은 이들 중 윤리학의 일부라 할 수 있고, 그나마 너무 단순화하면서 잘못 이해할 소지가 높은 내용입니다. 

   이 책 "쾌락"에는 규범론에 관련된 원문은 수록되어 있지 않고 자연학과 윤리학에 대한 원문만 소개합니다. 자연학과 윤리학에 대해서는 그 이름도 어렵고 생소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라는 사람이 쓴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에 수록되어 있는 에피쿠로스 형님의 저서가 원문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윤리학이야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니 그래도 상당히 수긍도 가고 읽고 공부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버트 그러나 문제는 윤리학 관련 내용은 잘 쳐줘야 전체 분량의 20%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이 비극이지요. 대부분 자연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것도  저자의 엄청난 저작에 비하면 완전 초 요약본인 편지만 실려 있는 건데도 이거시 무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내 다린지 남의 다린지 모르게 긁고 있는 소리 같아서 무척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혹시 이 책을 읽으신다면 중반의 자연학에 대한 내용인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와 천체 현상에 대한 이야기인 "헤로도토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머리를 진공상태로 비우고 그냥 읽으시거나 아예 생략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왜냐면 그 내용들이 과학적으로  이미 정리가 끝난 지금에 와서 읽기에는 너무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추측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양자 역학"보다 이해하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제가 관심이 있었던 윤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형님은 쾌락주의자가 맞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쾌락"이라는 단어와 이 분이 추구하는 "쾌락"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은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특히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쾌락(동적 쾌락)을 추구했던 퀴레네 학파와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지속적이고 정적인 쾌락을 추구했다. ‘아타락시아’란 바로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p146


   고통을 피하고 마음의 걱정이 없는 평안한 상태를 쾌락의 상태로 본다는 이 형님의 이론은 인도 철학의 정수인 우파니샤드에서 추구하는 해탈, "아트만"에 이른 상태와 아주 비슷합니다. 또한, 불교의 기본 이론과도 주요 맥락이 그대로 닿아 있어서 굳이 따지자면 상당히 동양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주장이었을 이 형님의 정적 쾌락 이론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익숙한 느낌입니다. 



2. 에피쿠로스 철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런데 말입니다. 이 형님은 왜 이렇게 다양한 주장과 저서를 남긴 것일까요? 그의 철학처럼 힘든 교육과 글쓰기를 오히려 피하고 차분하게 쉬면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면 안락한 삶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본인의 주장과 그의 행적은 어쩌면 모순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명분이...

   그의 행적에 대한 의문은 책의 후반부에 역자의 해설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그리스 도시 국가 시대인데 마침 이 양반이 커가던 10대 때는 사회가 슬슬 쇠퇴하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나라처럼 중류층이 빈민화되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당시 사회적 상황이 에피쿠로스로 하여금 뭔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도록 강제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힘들고 괴로운 시대를 견디어야 하는 에피쿠로스는 어떻게 하면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밝혀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이 양반 철학의 목적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이해는 됩니다만 이런 목적의식이 좀 지나쳤는지 기존 사회의 교육과 공적인 일을 거부하고 별도의 공동체만을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런 태도는 자칫 무정부주의자나 사이비 종교 같은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아타락시아'라고 하는 마음의 평안 상태인 정적 쾌락을 추구함과 동시에 최소한의 의식주에 만족하는 수준으로 욕망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욕망을 선택하고 어떤 욕망을 피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최소한의 의식주에 만족해야 한다고 답한다. (중략) 결국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계속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일도 아니고,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어떤 욕망을 선택하고 어떤 욕망을 기피해야 하는지 잘 계산하는 일이다. p147


   결론적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은 고통을 회비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에피쿠로스 형님이 가장 주목했던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고통의 원인 남바 원은 "죽음에 대한 공포", 남바 투는 "신에 대한 공포"라고 설명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형님의 주장이 상당히 아스트랄합니다. 

   "어차피 죽기 전까지는 죽음이 오지 않으니 모르는 것이고 죽어버리면 공포를 느낄 '나'가 없는 것이니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불필요하다. 신은 완전 무결하고 늘 만족해 부족함이 없는 존재니 아쉬울 게 없어서 자연이나 인간사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 자체가 없다. 그러므로 신의 의도와 자연 현상은 무관하니 신경꺼라." 이런 내용입니다. 언듯 그럴듯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조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인간이냐?라는 반론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죠.



3. 우리는 왜 에피쿠로스에게 주목해야 하는가?


   에... 또... 보통 소제목은 이런 식으로 다니까 쓰기는 했는데, 사실.. 우리가 딱히 에피쿠로스에게 주목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와 여러분이 한껏 갑질을 해가면서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위력을 뽐내며 살아갈 만한 대단한 자산가가 아니라면 에피쿠로스 형님의 행복에 대한 조언은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최소한의 의식주 외에 해당하는 욕망을 잘 제어하고 쓸데없는 마음의 두려움을 최대한 회피해 마음이 평안을 누리는 일은 지금으로 치면 "소확행"으로 풀이되는 삶의 태도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이 분은 행복의 조건으로 '성취'와 '소유' 따위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에피쿠로스 형님의 철학에 따르면 쇠락하는 그리스 도시 국가 시대에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듯이 오늘날 더럽고 치사하고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도 나름이 행복을 추구하는 작은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돈을 미어터지도록 벌어서 떵떵거리고 사는 쪽이 아니라면 에피쿠로스 형님의 고통 회피 신공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타락시아'라는 것은 오늘날의 '정신승리'와 무척 비슷한 개념입니다. '아타락시아'라는 단어가 뭔가 좀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만 결국 "자족하는 태도를 장착한 정신승리의 상태"를 달리 표현한 것이겠지요. 물론 이 양반은 방광암인지 뭔지 오랫동안 육체적인 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활발한 활동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무척 목표 지향적으로 산 것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후세에 "아타락시아"라는 단어 하나를 남겼으니 소중한 삶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결국 에피쿠로스 형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교훈은 욕심 버리기, 걱정 안 하기, 사려 깊게 공동체를 배려하기, 그리고 너무 복잡해서 설명은 생략했지만 미신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연학 등을 꾸준히 공부하기 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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