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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국내도서
저자 : 이국종
출판 : 흐름출판 201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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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돈 안 되는 일에 힘을 쓰는 이유...


최근 스페이스 X의 테슬라 로드스터 이야기가 관심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올 2월에 우주에 쏘아 올린 우주선 팰컨 헤비에 다른 화물이 아니라 전기자동차와 우주인 마네킹인 스타맨을 실어 보냈고, 최근에 스타맨의 위치를 알렸습니다. 일론 '멋'스크 답게 뭔가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미친 것 같기도 하지만 세상은 미친 사람에 의해 조금씩 진보해 나가는 것이 아니던가요.


팰컨 헤비의 궤도를 계산해 보면 약 63년 후 우리 행성에서 수십만 킬로미터 이내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까워진 거리가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쯤 된다고 하니 이쯤 되면 '장난하냐?'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론 머스크는 스타맨이 지구와 가장 가까이 오는 시기까지 살아남아 그 광경을 지켜볼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수명이 길어지면 버틸 수도 있겠지요. 


뜬금없지만 UFO 이야기도 해 볼까 합니다. 세계 몇몇 나라는 정부 단위로 UFO를 연구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UFO 연구를 통해 획기적인 군사기술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UFO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는 짓입니다. 현재로서는 외계인이 우리 눈앞에 나타나서 "우리가 외계인이요." 하기 전에는 그들의 존재를 명확히 밝혀낼 방법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UFO 연구를 통해 당장 실질적으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UFO 연구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여력도 없어 보입니다. 


당장 수익이 나는 일도 아닌데 몇몇 나라에서는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요? 이 와중에 우리나라는 왜 제대로 된 우주 계획도, UFO 연구 계획도 없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TBS 라디오 방송 "뉴스공장" 11월 5일 방송에서 김어준 씨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했습니다.


63년 후에나 지구에 다시 다가올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부럽다. 두 가지가 부럽습니다. 하나는 정신입니다. 당장에 경제성, 먹고사는 문제를 뛰어넘는 공상과학 수준의 상상력을 실제로 추진해 내는 정신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 문화적 토양, 모든 종류의 기초 과학을 그것이 어떻게 돈이 될 것인가 하는 상용화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우리네 토양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더욱 공고한 자본주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상관없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여겨지는 일에 투자를 합니다. 그것이 현재 우리나라에 만연하고 있는 '이익만 되면 뭐든 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와 차별화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미국적 자본주의와 패국 주의를 더 싫어하기는 합니다만...


돈이 안 되는 일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돈' 보다 '인간' 그 자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정신의 변질은 '인간' 그 자체를 객체화하고 도구화하다 못해 가치를 차등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돈이 안 되는 일에 국가 시스템을 동원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때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될 여지가 있고, 인류 보편적인 도약의 기회가 마련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지요.




2. 돈이 안 되는 일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외상’이 몸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에 의해 손상된 모든 것을 의미할 때, ‘중증외상’은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외상으로 반드시 ‘수술적 치료’ 및 집중치료가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어딘가에 부딪히고 깔리거나 떨어져서 혹은 무엇인가에 관통당해 사지와 뼈들이 으스러지고 장기가 터져나가는 경우들이다. 이때 환자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헬리콥터를 이용해서라도 이송은 신속해야 하고, 이송 중 적절한 처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최종 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에 도달해야 한다. 도착과 동시에 빠른 진단, 수술, 집중치료가 이어져야 하므로 수술방과 중환자실이 받쳐줘야 한다. 마취과부터 혈액은행, 의료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의료 자원도 신속히 투입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중증외상 환자들에 대한 ‘치료 원칙’이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어 극적으로 살아난 석 선장 사건이나, 최근 북한 귀순 병사의 응급수술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은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 전문의입니다. 최근 이분이 쓰신 책 "골든아워 1"을 읽게 된 것은 단순히 이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보다 너무나 심각한 내용에 무척 숙연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지가 터져 나가고 순식간에 사고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살리고자 진력을 다해 애쓰고 노력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단지 다양한 사고 유형과 그들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정리된 책이었다면 차라리 마음 편히 읽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증외상 환자는 최하층이나 빈곤층에 가까운 육체노동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들을 살리기 위해 투입되는 의료장비와 혈액을 비롯한 수많은 약품류에 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수준은 매우 낮습니다. 그렇기에 수술을 하고 사람을 살리면 살릴수록 병원에 적자를 안기는 골칫거리로 전락합니다.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에 따가운 눈총이 쌓이는 것은 돈의 논리로 사람의 목숨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외상 환자가 수술이라도 받다가 사망하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 현실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길에서 죽어나가고, 이런 죽음의 기록은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라는 허망한 숫자로만 표기될 뿐이다.


이 책은 아주대 중증외상 의료센터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유사한 문제가 너무나 많은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는 결국 국가적 철학의 문제로 환원됩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들을 주체도 들을 의지도 없습니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구조와 시스템이 결정됩니다. 오랜 군사 문화의 폐해이기도 하고, 경직된 사회 구조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선진적이고 실질적인 진보를 위한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지탄과 견제는 물론 비아냥거림이 돌아옵니다. 조직은 조직적으로 변화에 저항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말을 만들고 퍼트리며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을 거꾸러뜨리려고 합니다.


누군가는 내게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라서 더 힘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심각함이 지나쳤다. 기존의 체계와 인사, 재정, 지원과 운영 모든 면에서 부딪혔다.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이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주시했다. 비아냥과 비웃음을 감추지았았고 내가 등을 돌리는 순간 숨기고 있던 칼을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그 저열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이제는 나 하나로 끝나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덩달아 힘겨워졌다. 그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1권은 2013년까지 초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리하게 변하지 않는 시스템의 한계와 그 속에서 골머리를 앓으며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개인들의 노력과 희생에 기대어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조직 전체에서 핵심 부서와 인력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가 지속되면. 조직의 미래 이전에 당장 조직의 구성원들이 일하는 패턴을 바꾸거나 사직을 결정할 것이다. 나와 이세형은 이 점을 잘 알았다. 문제와 대안을 알고 있으나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다. 여전히 모든 결정은 실제 현장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국종 교수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버텨내며 나름의 변화를 꾀하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처참하게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거대한 구조적 한계 속에 처한 개인의 답답함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독자 입장에서 감정 이입하며 읽는 방식은 좋지만 종합병원과 같은 큰 조직, 거기에 국가 조직이라는 거대 조직 내에서 특정 분야의 고군분투기가 마치 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듯한 인상을 풍길 수 있습니다. 몇 사람만 모여도 의견을 조율하기가 힘든 것이 인간사입니다. 악한 사람들도 끼어 있지만 서로의 이해가 엇갈리는 문제는 세상에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분을 품으며 이 책의 내용을 읽어나가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럼에도 '돈'과 '경제논리'보다는 '사람'이 먼저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1권이 끝나도록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아진 것도 없습니다. 그저 공감하고 속이 상할 뿐입니다. 2권에서는 무언가 변화와 개선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펼쳐질지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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