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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국내도서
저자 : 문유석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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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사가 개인주의자여야 하는 이유(리뷰를 핑계로 쓰는 개인적인 생각)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개개의 고유한 특질을 가진 "One and Only" 유일무이한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는 그 사람의 신체적, 인격적 특징은 물론 그 사람의 성장 배경, 교육수준, 재산 유무, 인간관계 등 수많은 환경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언뜻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만 성의를 가지고 바라보면 인간들마다 드럽게도 다른 점이 많으니까요. 그러니까 맨날 이렇게 푸닥푸닥 쉐리 쳐 싸우고 다투고 사건사고가 많은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가 복잡해져가고 구조가 고도화되어 가면서 한 사람에 대한 평가와 판단 과정에서 개인의 "인간적인" 고민과 형편은 무의미해집니다. 미리 주어진 매뉴얼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안전한 판단을 하게 되죠. 기준을 찾아 위험부담이 있는 판단은 유보합니다. 그리고 윗사람, 윗선, 결정부서를 내세우며 그 뒤로 숨습니다. 이런 식의 태도는 한 조직에 정해진 기준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고민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리하여 그릇된 관행이 더욱 공고해지게 되는 것이지요. 


   법원과 판사를 언급할 때면 지겹도록 듣는 것이 있습니다. 법관의 독립, 법원의 독립. 고유 권한, 정의의 최후의 보루 블라블라.. 그러나 결정을 유보하고 위험부담을 기피하는 대표적인 자리가 바로 판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의 노고와 업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 그것도 제대로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이들이 책과 매뉴얼, 수많은 사례만으로 타인의 죄를 판단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니 얼마나 부담스러운 자리입니까?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고 죄를 가리고 심지어 벌금을 얼마나 부여할지, 감옥에 얼마 동안 가둘지 결정을 한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일입니다. 워낙에 케이스가 많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니 느끼기 힘들 뿐이지요. 더욱이 저와 여러분은 대체로 법 없이도 살다 가는 매우 건전하고 퓨어하고 알흠다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아닙니까?


   이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서 오류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찾은 것이 주로 판례를 찾아서 그걸 근거로 삼는 방식입니다. 그럼 그 판례에 등장하는 판사는 그 재판을 뭘 근거로 판단했을까요? 그 근거가 된 재판은 또 어떤 판례를 근거로 했나요? 가만 생각해보면 웃긴 일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애초에 누군가는 판례를 만들 재판을 했을 테고 그 판사가 후세에 두고두고 언급된 재판을 무오 하게 완벽하게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어차피 재판이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판단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성향과 정치적 입장, 더 너그러운 부분과 이상하게 까다롭고 혐오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조직 논리에 관심이 많거나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판사가 매우 공평한 판단을 내리기란 실로 힘든 것입니다. 한번 결정을 내리면 누구도 뒤집을 수 없고, 후에 외부 기관으로부터 재판에 대한 평가를 받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판사가 그나마 피고인에게 공평한 판단을 내리려면 한 개인에 대해 좀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건전한 개인주의자가 판사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사법부의 여러 가지 불법적인 행태들을 보다 보면 권력과는 거리가 먼 우리 일반인들은 도대체 무얼 믿고 어디에 기대 살아야 하나 하는 답답함이 쌓입니다.    




2.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판사유감


   앞서 시답잖은 이유로 판사에 대해 주저리 쓴 이유는 이 책을 쓴 저자가 "개인주의자 선언"을 쓰셨던 문유석 판사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개인주의자 선언"보다는 상대적으로 판사라는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쓰인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딱딱하고 지겹지 않은 것은 저자의 성향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합리적이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그러나 인간적인 저자의 성향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최근에 가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지우고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판사가 냉정하고 차갑고 객관적으로 재판에 임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오래된 선입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가정도, 취미도, 친구도 다 포기한 채 고독한 수도승처럼 의무의 감옥에 홀로 갇혀 있는 법관이 넓은 세상 속에서 펄떡펄떡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법리라는 잣대로 재단하는 것을 칭송하지 않는다. 행복한 법관은 더 참고 들을 여유가 있고, 더 긍휼할 줄 알며, 더 부드럽게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알며, 동시대인들과 공감할 줄 안다.


   저자의 주장처럼 더 이상 우리는 고고한 법관이 그 옛날 권위주의 시대에 작성된 법률 내용을 기준으로 무우 자르듯 내리는 판정에 재단되고 싶어 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부담스러워하는 것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공은 항상 법관이 가지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법관이 시대에 맞게 인간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은 어떤 좋은 법을 입안하고 판단 기준을 정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법부 안팎의 사람들과 케이스에 대해 소개하고 소회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법부 내 게시판에 작성된 저자의 글을 외부로 옮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서 감사를 표시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특히 파산부에서 근무할 때의 에피소드와 느낀 점을 밝힌 초반의 이야기들은 저도 깊이 공감하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측은지심을 갖는 수준에서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이해하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저자의 태도 자체가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도 앞으로 파산을 하면 좀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분란과 다툼 없는 행복한 사회를 위한 제언


   저자가 근무했던 법원 경험은 물론 하버드 대학에 유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기술한 부분 또한 신선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법원 내부적으로 세미나를 할 때의 문제점 등 우리가 잘 몰랐던 부분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점이 훌륭합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사회 안팎과 법원 내부적인 문제 등을 망라해 물질만능 자본주의 사회, 극단적 정치 혐오주의 사회, 초 경쟁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갈수록 우리 사회는 서로를 불신하고,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눕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선자라고 이를 갈며 증오합니다. 세상이 반반으로 갈라져 증오하는 불행한 시대에 나이브 한 개인주의자인 저 같은 자들은 설 곳이 없습니다. 그저 혼자 생각합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는데, 세상 모든 것의 본질은 밥그릇 싸움이고 결국 모두가 이기적인 것을 굳이 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버리면 어떨까. 그게 유전자 차원의 본능이라지 않는가.


   어쩌면 정말 간단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또한 내가 이기적이고 남 탓할 것 하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신을 이해하는 데서 타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의 약한 고리를 인정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 등은 지금 같은 극단주의 시대를 극복하는 지혜라 생각됩니다. 

   누가 어떻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제가 먼저 생각을 바꾸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하는 것이죠. 사회 속에서 개인이 추구해야 할 것과 정치, 경제적인 공동의 목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엄청 가난한 나라인 부탄이라는 국가가 왜 국민 총행복이 가장 높은지 생각해 볼 때인 것 같습니다.


부탄 왕국의 공주님이 있더군요.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공주의 나라는 참 재미있는 나라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천 불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교육과 의료를 국가가 보장하고 있고, 국민 총행복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랍니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계몽 군주인 그녀의 부왕은 국정 기본 철학을 국민소득이 아닌 국민 총 행복 극대화로 여기고 있고, 국가 경영 전략은 의도적인 저속 성장과 개발 지연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무조건 발전을 추구하고 성장과 돈을 목표로 삼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구조적인 문제로 부의 분배는 불평등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각자의 행복까지 불평등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최소한의 기본 생활만 국가가 보장해주면 가능합니다. 각자가 느끼는 행복이라는 것은 절대 평가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산이 있고 없고 와 상관없이 모두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유치한 생각만 조금 바꿔주면 가능하니까요. 그러니까 늘 주장하듯이 사람이란 좋은 책도 읽고, 훌륭한 분들에게 배우기도 하면서 스스로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고 살아야 합니다. 돈 벌어서 남들한테 자랑하면서 우쭐해 하며 행복을 느끼는 유치한 짓은 좀 그만하고 말입니다. (나도 많이 벌면 꼭 해볼 테다...)


사회는 소수만이 승자가 될 수 있는 경쟁이 아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행복의 가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먼 훗날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되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며 행복하겠다는 희망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선 바로 이 자리에서 소박하게 나마 가족, 이웃과 함께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누구에게도 폄하 되지 않고 존중되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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