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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인문학 전성기의 시대, 예능 인문학 강사의 맹활약과 인문학 강의 열풍

 

요즘 인문학의 유행을 보면 나로서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인문학은 유행할 뿐 연구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이 뒷전으로 밀린 지는 오래되었고 날이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있어 너무 슬프다. 젊은이들은 이런 시류를 읽는다. 자리 잡을 데 없는 인문학, 몇몇 스타의 인문학, 학문과 엔터테인먼트가 구별되지 않는 인문학 속에서 청년학인들은 절망한다. 자본주의에 휘둘리는, 겉은 있고 속이 없는 인문학이 범람한다.


 

인문학은 살고 인문학자는 죽어가고 있다. 인문학을 지탱할 인문학자를 키울 요량은 없다. 껍데기 인문학이다. 그저 만족하거나 과시하는 ‘허영의 인문학’, 청년은 사라지고 노인들만 붐비는 ‘은퇴의 인문학’, 인문학에 대한 장기투자는 없고 산만한 무료 강연만 난무하는 ‘일회용 인문학’이다.

 

2018년 10월 21일자 경향신문 오피니언란 충북대 전세근 교수님이 기고하신 [시론 2018 인문주간에 부쳐]의 일부분입니다.

 

>>경향일보 원문보기<<

 

근래 들어 인문학이 대부흥기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워낙에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는 책도 많고, 인문학 강의도 인기입니다. 게다가 몇몇 강사나 교수들을 중심으로 예능에 진출해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분들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한 바는 없지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설민석 강사 같은 경우는 1회 강사료가 1천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최진기 강사의 경우도 500만 원, 기타 다른 유명 강사들도 최소 300만 원 이상은 줘야 강연에 응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스타 인터넷 강사 출신으로 요점을 잘 전달하고 지루하지 않게 대중 강연을 잘 합니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 역시나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제대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스타 강사가 나타나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젊은이들은 정말 그들의 강의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을 것을 기대하는 것인지, 그 강사를 연예인처럼 신기해하고 좋아해서 환호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스타강사들의 강의 속에는 젊은이들의 좌절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갈곳을 잃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편, 이런 형상과 발 맞추어 '예능 인문학자'들의 대중 인문학 책도 큰 인기입니다. 인문학이라는 다소 어렵고 딱딱해 보이는 학문에 접근하기 위해 대중인문학서가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그 덕분에 생소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 역사, 문학 분야를 그나마 입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역할을 절대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대중인문학 강의 붐이라는 것을 개인의 인문학 공부와 연결 지어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겠습니다. 대중인문학의 강의 참석 붐을 바라보고 있자면, 왠지 아이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에서 모든 정보를 획득하는 것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문학의 범주에 있는 철학과 역사, 문학을 과연 1시난 남짓의 강의를 참석하는 것으로 채울 수 있는 문제일지 고민이 됩니다. 정보를 쉽게 획득하고 고민과 성찰보다는 손쉬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됩니다. 그 일환으로 스타 강사의 강의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만 보면 이런 강의에 참석하는 분들은 비슷한 강의에 지속적으로 참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수준 있는 인문학 강의를 계속해서 수강한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 지능의 시대에 우리의 돌파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인공 지능으로부터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우리가 인문학 강의에 쫓아다니는 것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결코 쉽사리 답을 도출할 수 없는 이 문제를 대하면서 우선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인간의 뇌는 의외로 시대적 흐름과는 상관없이 많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늘 비슷한 수준이지만, 인간 뇌의 여러 기능 중 어떤 기능이 더 중요한 상황인지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태수 인제대 인간환경미래연구원장님이 몇년 전 조선 BIZ와의 [석학 인터뷰 :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잘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인간의 지능에는 여러 기능이 있다. 가령 내가 집중해서 공부하는 문명 초기 단계, 그러니까 BC 약 8세기경 문자를 쓰기 시작한 때에는 사람들 기억력이 굉장히 좋았다. 문자가 없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머리 속에 담고 다녔다. 그때는 머리 좋다는 게 기억 잘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자가 발명되는 순간 기억력이 마구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시대에 와서는 머리 좋다는 게 빨리 배운다는 것이었다. 기억 잘 하는 것보다 빨리 배우고 계산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해졌다. 하지만 컴퓨터가 나오고부터는 이해하고 계산하는 능력의 중요도가 격감했다. 과거엔 배워야 했을 것도 이젠 검색하면 되니까.

이제는 패턴의 습득이 아니라, 여러 요소들의 조합을 어떻게 잘 하느냐, 남이 못하는 구성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 하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지금부터 지능에서 중요한 것은 남이 못 본 것을 연결시키거나 없던 것을 상상해내는 능력이다. 아주 애매모호한 말이지만 ‘창의적 사고’가 중요해졌다. 이게 사실은 인문학이 해오던 사고다. 인문학은 과학이 나오면서 아주 느슨한 학문 취급을 잠깐 받았는데, 이제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 생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예감 단계인데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쓸모’가 아주 중요했는데 쓸모란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근데 지금은 안 보이는 데서 뭘 찾아와야 실용이 생긴다. 보이는 데서 찾아오면 이미 실용 경쟁에서 뒤진다. 그래서 지금은 지적 모험을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해졌다.

>>조선BIZ 인터뷰 원문보기<<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고 노령화가 지속되면서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젊은이들과 세대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하는 사회 초년생들의 좌절이 지속되면서 워라벨, 욜로, 소확행 등의 용어와 함께 노동할 권리보다는 '노동 안 할 권리'에 집중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취직보다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등 한편으로는 미래지향적이고 인간적이라 볼 수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유리되는 듯한 모습이 고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두가 답이 없어 보이는 현실의 암담함을 돌파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4차 산업시대, 인공지능의 공습 등의 표현으로 사람들의 공포를 더욱 조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국이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은 인문학 밖에 없다'라는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과연 그거면 되는가?'라는 의구심이 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눈에 펼쳐지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이미 자본주의에 굴복한 듯한 왜곡된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인문학도 돈이 되는 방향으로 심하게 편향이 되면서 돈벌이의 일환, 돈이 모이는 아이템으로 활용되면서 "인문학"자체가 거대한 속임수의 용어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는 도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가하던 역할도 대부분 인공 지능이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맞아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인공 지능에게 넘겨주기 힘든 고유의 창조적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인간 특유의 창조적 사고를 위해서는 결국 인문학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다시 인문학에서 인문학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유행하는 대중인문학, 타인의 사고 결과를 요약한 내용을 그나마도 영상이나 음성으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보입니다. 어렵고 지루하지만 스스로 고전을 읽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고된 창조적 고뇌의 시간을 거쳐야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창조적 사고가 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제대로 된 인문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합니다. 저도 다시 처음 언급했던 충북대 전세근 교수님의 발제문으로 되돌아가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4차산업 시대에 사람이 할 일이 사라지고 있다. 연금생활자가 쏟아져 나오고 20, 30대들은 직업 없이 살아야 한다. 그들 모두를 살아가게 할, 하루하루가 뜻있고 즐겁게 만들 방책은, 등산 말고는 아무래도 인문학밖에는 없는 것 같다. 등산 가방에 꽂혀 있을 한 권의 책, 상상만 해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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